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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아닌것 같은데 라는 생각이 들땐 역사를 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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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vkqith
작성일21-05-11 12:04 조회2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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튤립 파동










튤립 파동



(Tulip mania)은 17세기


 



네덜란드



에서 벌어진 과열 투기현상으로, 사실상 최초의


 



거품 경제



 


현상으로 인정되고 있다.


당시는 네덜란드 황금 시대였고, 네덜란드에 새롭게 소개되었던


 



튤립



 



구근



이 너무 높은 계약 가격으로 팔리다가 급락했다.






튤립 파동의 정점은


 




1637년




 


2월이었다. 튤립은 숙련된 장인이 버는 연간 소득의 10배보다 더 높은 값으로 팔렸다. 튤립 파동은 역사상 기록된 최초의 투기로 인한 거품이었다.


 




 


"튤립 파동" 이란 용어는 이제 거대한 경제적인 거품(자산 가격이 내재적인 가치에서 벗어날 때)을 가리키는 은유로 자주 사용된다.














1630년대



 



네덜란드



에서는 수입된 지 얼마 안 되는


 



터키



 


원산의 원예식물인


 



튤립



이 큰 인기를 끌었고, 튤립에 대한 사재기 현상까지 벌어졌다.


 






이 피지 않았는데 미래 어느 시점을 정해 특정한 가격에 매매한다는 계약을 사고파는 선물거래까지 등장했다.


 


1630년대 중반에는 뿌리 하나가 8만7000



유로



(약 1억6000만원)까지 치솟았다.


 


그러나 어느 순간 가격이 하락세로 반전되면서 팔겠다는 사람만 넘쳐났으므로 거품이 터졌다.


 



상인



들은 빈털터리가 되었고 튤립에 투자했던


 



귀족



들은 영지를 담보로 잡혀야만 했다.


 


이러한 파동은


 



네덜란드





 



영국



에게 경제대국의 자리를 넘겨주게 되는 한 요인이었다.










1610년대

, 최초로 튤립의 아름다움에 마음을 빼앗긴 것은 여유 있는 식물 애호가들이었다. 아름다운 튤립 뿌리는 처음부터 고가로 거래되었다. 또한 원예 애호가들은 독자적인 품종개량 및 재배를 통해 다양한 이름의 튤립이 태어났으며 단색 유형은 싸게 판매되었고, 이런 아름다운 꽃의 구근은 적어도 1000 플로린의 값이 매겨져 있었다. 그리고 튤립의 인기가 높아짐에 따라 점점 상승하게 되었다.









투기자들이 튤립의 인기에 주목한 것은 
1634년

 무렵으로 추정된다. 그들은 튤립을 재배하거나 꽃의 아름다움에 관심을 가진 것이 아니라 가격 상승을 목적으로 시장에 진입 하였다. 수요 증가로 구근 판매가 활성화되었다. 그 중에는 일확천금을 이루는 사람도 나왔다. 고급 품종 구근 하나로 집이 바뀌는 일도 있게 되었다. 튤립으로 단기간에 막대한 부를 얻을 수 있다는 소문이 장인과 농민 등에게도 퍼졌고, 그들도 서서히 시장에 참가했다. 밑천이 없는 서민들은 우선 자신도 살 수 있을 정도의 구근에서 시작했다. 그 정도의 품종도 값은 상승하였고, 전매 이익을 얻는 자가 속출했다. 이에 따라 시장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연중 거래와 그에 따른 선물 거래 제도가 도입된 것이다.











이러한 거래는 정식 증권거래소가 아닌 술집에서 열렸다. 거래에서 현금이나 현물 구근은 필요 없었다. "내년 4월에 지불한다", "그때 구근을 배달한다"는 계약서로 끝낼 수 있고 경미한 중도금으로 판매할 수 있었다. 중도금이라고 해도 현금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며, 가축과 가구와 같은 환금을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통용되었다. 그 계산서가 거래를 반복하는 가운데 몇 사람을 통해 알고 있고 채권자와 채무자가 어디의 누구인지도 모르는 상황이 되고 있었다. 이 선물 거래 시스템을 통해 자본이 없는 사람도 투기에 참여했다. 빵굽는 사람이나 농민같은 일반인들까지 튤립 시장에 참여하면서 수요가 팽창하여 싼 품종도 급등했다. 그러나 가격 상승에 따라 본래의 구매자인 식물애호가들은 구매를 하지 않게 된다. 특히 서민들이 거래하고 있었던 싼 구근을 애호가들은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1637년

 
2월 3일

 튤립 거래가가 갑자기 폭락했다. 가격이 떨어졌다기보다는 구매자가 전혀 없는 상태였다. 
어음

은 부도가 났으며, 지불을 할 수 없는 채무를 가진 사람이 3000명 정도였다고 했다. 네덜란드 각 도시는 혼란의 구렁텅이에 빠졌고, 여기저기에서 지불을 하지 못한 채무자와 지불을 하지 않은 채무자들의 말다툼과 도주가 이어졌다. 이제 각 채권자가 동시에 채무자가 되어 갔다. 채무이행을 요구하며, 소송을 건 자들도 있었지만, 채무자에게 이행 능력은 없었고, 사태 해결에 효과적인 수단도 되지 못했다.







이런 혼란 사태에 직면하자 의회와 시당국이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했다. 채무자와 채권자의 강렬한 로비 전쟁 끝에 "조사가 끝날 때까지 튤립 거래는 보류한다"라는 결정이 내려졌다. 그러나 이것은 일괄 해결로 치달았다. 계약서에 의한 계약은 일괄 무효가 되었고, 소수의 파산자와 벼락 부자를 남긴 채 튤립 마니아의 시대는 막을 내렸다.







튤립 버블은 네덜란드 경제와 그 역사에 거의 영향을 남기지 않았다. 식물 애호가들은 비싼 튤립을 계속 요구했고, 다른 산업이 타격을 받았다는 사료도 발견되지 않았다. 예외적으로 간파할 수 있는 것은 정신 문화에 미친 영향이다. 절제, 금욕을 취지로 하는 
칼빈주의

적 미덕관이 부활하였고, 튤립 시장에 참가한 사람을 노골적으로 비판하는 소책자가 발간되었다. 튤립을 
로마 신화

의 여신 
플로라

에 비유하여 "욕심많은 플로라에게 바치는 바보들"이라고 비판했다. 이후 네덜란드는 일시적으로 튤립을 싫어하게 되었고, 네덜란드 사람 사이에서 교훈으로서 구전되었다.













출처 : 위키백과



















요즘 "코인"이라는 품종의 튤립이 다시 유행하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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